봄이 만개했다. 파란 하늘을 이고 있는 녹색 정원에 꽃무늬 드레스를 입은 젊은 여인이 파라솔을 들고 서 있다. 레이스가 출렁이는 그녀의 파라솔, 머리에 쓴 보네, 그녀의 하얀 드레스, 그녀 뒤 나무들 위에 꽃이 만발해 그림 전체가 한 떨기 봄꽃이다.
아직도 밤바람이 매섭던 3월 초 어느 날, 바람결에 실려 오는 재스민 향기를 맡았다. 코 끝에 언뜻 스치는 정도였던 그 향기가 하루 온종일 공기 속에 떠다니게 된 지가 이제 한참 되었다. 겨우내 앙상하던 나뭇가지들에는 연한 초록빛 싹이 피어오르더니 나무들이 싱싱한 잎새로 풍성해져 간다. 봄기운이 완연하다.
프랑스 화가 에두아르 마네는 이토록 봄 소식이 생생한 그림을 세상을 떠나기 2년 전에 그렸다. 병들었고 고통에 신음하던 시기였다. 어두운 시간이었지만 이때 그가 마지막으로 남긴 작품들은 꽃이 만발한 정물화, 밝고 힘찬 초상화 등 생명력과 환희가 넘치는 그림들이다.
1881년 완성한 ‘봄’은 유명 여배우 쟌느 드마르시의 옆모습을 드라마틱하게 잡아낸 걸작이다. 머리에 예쁜 꽃 장식을 달고 꽃무늬 드레스에 보닛(여성이나 어린아이들이 쓰는 모자)으로 멋을 잔뜩 부린 마르시가 양산을 들고 있다. 마네의 섬세한 붓터치와 풍부한 색감으로 봄기운이 생생하게 살아 있다. 1882년 당시 프랑스의 가장 권위 있는 미술공모전인 파리 살롱전에 처음 출품한 작품이어서 더욱 화제를 모았다. 미국의 석유부호 폴 게티 가문이 설립한 게티미술관은 2014년 11월 뉴욕 크리스티경매에서 이 그림을 6510만달러(약 732억원)에 사들여 세계 미술계를 놀라게 했다.
친구 앙토낭 푸르스트의 제의로 그리게 된 연작의 첫째 그림이었다. 프루스트는 마네에게 당시 파리의 멋쟁이 여인 4명을 모델로 4 계절을 묘사하는 연작을 그려보라고 제의했다. 그들의 패션과 미모를 통해 당대 파리 여인들의 현대적이고 이상적인 모습을 그려보라는 취지였다.
마네는 유명 배우 쟌느 드마르시를 모델 삼아 ‘봄’을 그리고 다음 해 다른 모델을 기용해 ‘가을’을 그린 후 연작을 완성 못한 채 세상을 떠났다. 세상을 떠난 때가 4월이라 여름과 겨울을 더 이상 보지 못했다. 그렇게 떠나리라 예상했던 것일까? 남은 생의 숨결을 다 쏟아부은 듯한 이 녹색 그림 속에 그가 남기고 간 봄이 청명하게 빛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