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깊고 푸른 하늘빛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온 세상의 빛이 그 작은 화면에 집결된 듯 보석처럼 빛난다.
생명이 터져 나오는 듯한 꽃 하나하나를 어떻게 말로 묘사할 수 있을까.
시각적 깨달음의 순간이라고 밖에 표현할 길이 없다.
새봄과 새 생명을 상징하는 꽃나무.
더 깊은 의미는 고흐가 가지고 있는 삶의 연약함일지도 모르지만 아몬드 꽃나무 그림은 완전한 삶에 대한 그리움을 일깨우고, 꽃은 열매를 맺기 위한 첫 준비인 만큼 더 많은 약속을 담고 있는 그림인 것 같다.
고흐는 삶의 고통 속에서도 자연을 매우 사랑했고, 그에게 가족은 가장 소중한 사랑 그 자체였습니다. 삶에 대한 희망의 갈망은 그의 조카 탄생을 기념한 선물인 이 그림에서 표현됩니다.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가족과 자연의 새 생명을 상징으로 아몬드 꽃을 그리기 시작합니다. <아몬드 꽃>을 완성하고 빛을 칠하려 했지만 다시 건강이 악화되어 붓을 잡을 수 없게 됩니다. 빛을 그려 넣어서 나무에 꽃을 피우고 생명으로 이어지게 하고 싶었는지도 모릅니다. 붓을 잡을 만큼 회복이 되었을 때는 이미 계절이 바뀌어 있었고 빛을 향한 그의 투쟁은 생의 마지막 날을 맞이합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다른 작품들의 강렬한 노란색보다 더 부드러운 색으로 그려졌다는 것이고 나뭇가지는 눈부시게 밝고 하늘의 파란색은 청록색으로 상징적 성격을 부여합니다. 페인트가 많이 도포된 배경으로 꽃은 두꺼운 공기와 나뭇가지와 대조되고 꽃망울이 자라나는 새싹 주위에는 밝은 녹색 잎이 접혀있습니다. 멀리서 보면 작은 꽃이 분홍색이고 연약해 보일 만큼 섬세하게 빛납니다.
그림에 표현된 아몬드 꽃은 인간의 삶과 미래에 대한 생각과 연결되어 있었고 어떤 의미에서 그림은 자신에게 주어지지 않은 것은 근심 없고 행복한 미래를 외치려 했을 것입니다. 아마도 고흐는 아몬드 꽃을 그렸을 때 가장 행복했을지도 모릅니다.
1875년부터 1890년까지 고흐는 엄청난 양의 채색화와 데생을 그렸다. 또 그 기간 동안 고흐는 수백 통에 달하는 편지를 쓰는데 대부분은 동생 테오에게 보내진 것들이다. 가난을 견디면서 정상적인 삶과 광기 어린 삶을 오갔던 고흐에게 동생 테오는 단순한 화상 이상의 후원자요 정신적인 공명판과도 같은 존재였다. 고흐는 테오뿐만 아니라 어머니와 여동생 빌헬미나과 폴 고갱, 에밀 베르나르 같은 동료 화가들에게도 편지를 썼다. 편지들은 테오의 아내 요한나에 의해 수집되어 1914년 여러 권의 책으로 발행된다.
우리는 예술가 고흐의 천재성과 심오한 관찰력뿐만 아니라 결코 해소될 수 없었던 정서적 불안, 영혼을 끊임없이 괴롭혔던 사무치는 고독감과 자신에 대한 의혹을 읽을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예술론이 변화되어 가는 과정을 따라가는 동안 철저한 작업 윤리도 이해할 수 있다. 고흐는 이들 편지 속에 작업 중인 작품의 스케치를 첨부하거나 언젠가 그리고 싶은 그림에 대한 생각을 털어놓기도 한다.
1890년 1월 31일에 고흐는 동생 테오로부터 아들을 낳았다는 편지를 받았다.
사랑하는 형의 이름을 따서 빈센트 빌렘이라고 아기 이름을 지었다. 고흐는 당장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아몬드 꽃이 가득 피어있는 그림. 동생 부부의 침실에 걸도록 선물할 계획이었다. 반 고흐가 머물던 프랑스 남부에는 아몬드 나무가 지천이었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온다는 소식을 제일 먼저 전하듯이 2월만 되어도 흐드러지게 꽃이 피었다. 파란 하늘을 이고 피어나는 아몬드 꽃은 새 생명의 상징이었다.
고흐의 마지막 날들이 다가온다는 것은 비극이 아니라 미래에 대한 자신의 낙관을 나타내는 것이다. '새로운 탄생의 시작'을 나타내는지도 모릅니다. 신비롭게 빛나는 생명과 같은 색채와 누구보다 강렬했던 예술의 열망이 우리에게 또 다른 희망을 꽃을 피우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가난과 고통 속 비운의 삶이었지만 고흐의 그림 속에는 영원한 희망이 느껴집니다. 꽃이 개화하는 나무들과 봄과 새 생명의 시작을 알리고 태어나는 조카와 자신을 새로운 삶을 바랐던 그림일 것입니다.
고흐는 같은 해 7월 세상을 떠났다. 정신병을 앓아서 치료를 받던 중 스스로 권총을 가슴에 쏜 상처가 감염되어 죽었다. 의도된 죽음이었는지 아니면 사고였는지 아직도 확실하지 않다.
동시대로부터 인정받지 못했던 그림천재는 [슬픔은 영원히 계속된다]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남겼다.
절망적인 탄식에도 불구하고 그가 추구한 것은 영원한 삶의 열정이었다. 기쁘고 찬란한 생명의 찬미였다. 이 눈부신 그림 하나가 그 모든 것을 말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