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절규 _ 에드바르 뭉크

by 여행꾼쭈 2023. 8. 24.

절규 _ 에드바르 뭉크

 

휘청이는 대자연과 불안한 사람의 얼굴.

흔들리는 대자연과 그 안에서 절규하는 인간.

둘을 분리해 주는 듯한 불안정한 난간은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다.

현실과 비현실이 혼재된 모습 속 표현되는 강한 감정의 묘사는 관객들을 모두 놀라게 만들었습니다. 그리하여 세기를 대표하는 작품으로 평가받습니다.

 

뭉크는 왜 절규를 그렸을까요?

현대인의 불안한 자화상을 표현했다.

 

뭉크는 정말 그림을 많이 그렸습니다.

사람들은 뭉크를 하면 <절규>를 떠올리곤 하지만 독신의 살면서 뭉크는 80년 생애 동안 25천여 점이 넘는 작품을 남겼습니다.

 

전생애에 걸쳐 그림을 그린 만큼 뭉크의 작품은 계속해서 변해왔습니다. 하지만 뭉크의 모든 작품을 관통하는 키워드가 있습니다. 바로 고독과 불안.

 

뭉크는 사람, 사물, 자연을 화폭 속에 담았다.

이따금 밝은 느낌의 작품들을 만들기도 했지만, 대체로 어둡고, 거친 또 휘청거리는 화풍의 작품들을 많이 만들었습니다.

 

그중에서도 <절규> 뭉크 작품의 정수라 평가받습니다.

현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고통과 불안을 대표하는 작품이라 알려져 있습니다.

 

학창 시절 미술시간에 그림을 그릴 때 가장 많이 패러디하는 그림 <절규>유명세로만 보자면 <모나리자>를 능가할 만큼 이 작품은 누구나 알고 있다.

1893년에 그려진 <절규>는 소리 지르면서 절규하는 뭉크 자신의 내면적인 고통을 그린 것으로, 그의 작품 중 가장 유명하다. 화면의 아래쪽에 위치한 유령 같은 인물은 관객을 정면으로 향하고 있다. 눈을 크게 뜬 채 입을 벌리고 있는 해골 같은 얼굴은 관객에게 공포에 찬 비명을 환청으로 들리게 한다.

 

미래에 대한 불안한 심정을 그림 속 절규하는 인물이 대변해 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불안에 떨지 않고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고자 하는 모두의 본능적 열망이 표현된 그림이라고 할 수 있겠다.

 

청각의 시각화를 통해 자신과 현대인의 불안한 자화상을 표현하고 있다. 내면세계에 대한 탐구, 잠재의식에 대한 관심, 자아에 대한 발견은 뭉크가 평생에 걸쳐 심혈을 기울인 주제들이며 표현주의 미술의 특징이다.

 

에드바르 뭉크(1864~1944)는 노르웨이 출생. 군의관인 아버지와 이지적이고 자상한 어머니를 둔 뭉크는 누나와 3명의 동생들 사이에서 자랐다. 그가 잘 따랐던 누나 소피에와 뭉크는 어머니의 예술적 재능을 물려받아 어릴 적부터 그림을 잘 그렸다고 한다.

 

뭉크가 다섯 살 되던 해 1868년에 어머니가 결핵으로 사망하고, 누나인 소피에 역시 같은 병으로 1877년에 사망한다. 어린 시절 경험한 가족의 죽음과 이로 인한 공포는 그의 전 생애에 걸쳐 작품의 주제가 되었습니다.

 

미친, 고통스러운, 매혹적인, 정신병적인 등 에드바르 뭉크의 작품을 설명하는 데는 이들 단어가 부족하지 않습니다. 예술가의 영혼 전체, 고통 속에서 울부짖는 어둠으로 이루어진 불행의 영혼이 담겨 있는 것 같습니다. 인류의 도움을 구하는 이 가슴 아픈 외침과 실망을 들을 수 없더라도 몸에서 그것을 느낍니다. 무감각하게 굳어진 것을 보면 억압하는 괴로운 불편함은 아닐지라도 일종의 육체의 소름을 경험합니다. 우리는 고통과 고뇌의 회오리바람 속에서 자신을 잃어버리고, 마치 우리 발 밑의 땅이 빠져나가 끝없는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처럼 어지러움을 느낍니다. 그러면 익숙한 감정과 감정이 다시 떠오르게 됩니다.

 

비명 _ 기억의 소리 각인처럼 나타나며, 스스로도 모르게 수행하는 영혼을 탐구함으로써 의식이 반사되고 상실되는 깊이를 느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