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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비를 안고 있는 여인 _ 레오나르도 다빈치

by 여행꾼쭈 2023. 8. 19.

담비를 안고 있는 여인 _ 레오나르도 다빈치

 

눈은 부드럽게 어딘가를 응시하고 얇은 입술은 단호하게 보인다.

어둠 속에 홀연히 솟아 오른 듯 빛나는 초상화의 주인공 체칠리아 갈레라니.

체칠리아 하얀 얼굴과 담비의 눈동자 빛깔과 같은 밤색 눈동자를 보며 사실 담비는 분신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된다.

 

초상화의 인물이 대개 몸과 얼굴을 한 방향으로 보고 있는 것과는 달리 체칠리아는 오른쪽으로 몸을 틀고 얼굴은 왼쪽으로 돌려 알 수 없는 빛의 근원을 향해 눈동자를 고정시키고 있다. 분홍색 입술을 꼭 다물고 무언가에 귀를 기울이는 듯하다. 그녀의 품에 안긴 동물은 눈부신 백색 털을 가진 겨울 담비이다. 날카로운 눈빛으로 체칠리아와 같은 방향을 보며 금세라도 공격할 듯 긴장된 자세이다. 백색 털을 더럽히며 도망가느니 사냥꾼에게 잡혀 죽고 만다는 결백한 담비는 순결의 상징이다. 담비는 스포르차가 사용했던 문장에 그려진 동물이니 스포르차를 상징하는 장치일 수도 있겠다. 당대의 권력을 휘두르던 군주가 한 소녀의 품에 안겨 사랑을 받고 있다는 은유인 셈이다.

 

르네상스 시대에 막강한 권력과 부를 자랑하던 이탈리아 밀라노 공국의 여인이었다. 공국 궁정 화가였던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초상화를 그렸을 무렵, 나이가 열여섯 살이었으니 소녀라는 표현이 걸맞다. 밀라노 공국 군주 루도비코 스포르차의 애인이었다. 귀족이 아니었고 집안도 변변치 못했기 때문에 고귀한 귀족 여인처럼 화려하게 치장을 하지는 못했지만 그녀는 학식이 뛰어났고 예술적 재능이 넘치는 매력적인 존재였다. 스포르차는 우아하고 고상한 체칠리아에게 빠져 버렸다.

 

예술의 절정기에 있었던 다빈치는 군주에게 사랑받는 소녀의 모습을 아름다운 육체뿐만 아니라 내면의 빛까지 담아 초상화로 남겼다.

 

오늘은 귀여움을 받지만 언제 내쫓겨 죽을지 모르는 애완동물의 처지가 정식 부인이 되지 못하고 애인으로 머물러야 했던 그녀의 처지와 같기 때문이다. 체칠리아는 스포르차가 인정한 아들을 낳았지만 일 년 후 성 밖으로 내침을 당한다. 아이를 낳고 살이 쪄서 보기 싫다는 것이 이유였다. 하지만 페라라 공국의 공주 베아트리체 데스테와 결혼한 스포르차가 나이 어린 부인의 눈치를 보느라 연인을 보내버린 것일 수도 있다. 버림받은 체칠리아는 다 빈치가 그려준 자신의 초상화를 들고 성을 떠났다. 스포르차가 사랑한 가냘프고 순결한 모습은 사라지고 늙고 서글픈 모습으로 여생을 보냈다고 한다.

 

체칠리아의 초상은 여기에 남아 있다. 아름다운 육체와 예민한 영혼이 청춘의 빛 속에 반짝이는 불멸의 모습은 세상에 그때 그 모습 그대로 전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