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과 오른쪽에 각각 대치하듯 자리한 알몸 여인들과 갑옷 입은 장정들의 표정과 자태다. 고통과 공포로 얼굴이 일그러진 두 명의 여인과 체념한 듯 눈을 감은 다른 여인, 멍하니 정면을 바라보는 소녀, 그들 품으로 달려드는 두 명의 소년과 안긴 아이, 밑에서 노는 아이. 모두 알몸이고 무방비 상태다. 반면 오른쪽에는 철갑을 갖춰 입은 군인들이 기계장치 같은 총을 여성과 아이들에게 겨누고 있다. 그들에게는 어떤 감정이 서린 표정도 보이지 않는다.
불타고 황량해진 들녘을 배경으로 6.25 전쟁의 참상을 상상한 그림이다.
파리 국립 피카소미술관에 소장돼 있는 <한국에서의 학살>은 <게르니카(1937)>와 함께 반전을 주제로 한 피카소의 대표적인 작품이다.
1951년 세계 현대미술의 대명사이자 최고 거장으로 군림하던 70살의 파블로 피카소는 뜻밖의 문제작을 그려냈다. 지구 정반대 편 한반도에서 벌어진 전쟁터의 학살을 소재로 한 대작을 완성한 것이다
<게르니카>를 탄생시켰던 제2차 세계대전과 스페인 내전이 유럽을 중심으로 한 파시즘과 기존 제국주의 국가의 전쟁이었다. 전쟁이 끝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자유주의와 공산주의 진영 최초의 전면전이 아시아에서 벌어진다. 6.25전쟁이다. 피카소는 이 전쟁에서 벌어진 학살을 접하고 <한국에서의 학살(1951)>라는 작품을 그리게 된다.
프란시스코 고야의 걸작 <1808년 5월 3일>
프랑스 나폴레옹 군의 스페인 시민 학살 그림의 도상을 다른 구도로 재연한 것이다. 연약한 약자와 이를 짓밟는 가해자의 근접 대치 장면은 고야가 창안한 근대회화의 획기적인 구도였고 그를 평생 스승으로 흠모하며 수없이 옮겨 그렸던 피카소는 마침내 한반도의 전쟁으로 무대를 옮겨 재해석했다. 여성들 얼굴에는 독일 공군이 스페인 마을에 가한 기총소사 학살의 참상을 고발한 자신의 14년 전 대작 <게르니카>의 절규하는 군상들의 면모가 살아나 있다.
고야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이 작품은 학살 장면을 담고 있다. 오른편의 강철 로봇의 모습을 한 군인들이 총구를 들이대고 있는 모습과 함께 왼편에는 그 총구 앞에서 떨고 있는 여자들과 아이들을 배치했다. 인간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흘러가면서 오른쪽에 있는 인물보다 왼쪽에 있는 인물에 더 공감을 하게 된다고 하는데, 고야의 작품에서처럼 이 작품 속에서도 오른편의 학살자와 왼편의 여자들이, 전체적으로 무채색의 색상 속에서 비극적으로 대비되고 있다.
전쟁의 비참함과 추악한 모습을 그대로 묘사한 이 작품은 정치적으로 활용하기에는 적절치 못한 다소 추상적인 형태로 전쟁을 다루고 있다. 피카소는 이 작품을 통해서 <게르니카>에 이어서 보편적인 의미로서 전쟁으로 인해 벌어지는 폭력적이고 야만적인 행위를 고발하고 있다.
특정한 가해자와 피해자가 표현되지 않고 비극적인 학살을 다루고 있다. 대량학살이 가능한 현대무기와 현대의 전쟁을 비판한 것이라고 한다.